article search result of '한류' : 1

  1. 2008/06/26 뜬금없이 신승훈 예찬론 (13)

뜬금없이 신승훈 예찬론

신승훈

 누군가 제게 모든 아티스트를 통틀어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하면 주저하지 않고 신승훈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평생 가장 많이 들은 음악이 그의 곡이고, 처음 노래를 듣자마자 말 그대로 필이 꽂힌 가수는 신승훈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블로그 포스팅에서는 존대를 쓰는 것이 기본이지만, 작품 혹은 인물평에 대해서는 생략하려 합니다.



첫 인상..


 신승훈의 노래를 처음 들은 것은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초등학교 3학년인 1995년부터 KBS, MBC, SBS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즐겨 보던 나는, 다른 애들에 비해 가요를 굉장히 빨리 접한 편이었다. 아버지는 광화문에서 일하셨고, 나나 동생이 원하기만 하면 교보문고에 들리셔서 아직 TAPE가 더 많이 팔리던 시기에 그 비싼 CD를 수십 장이나 사오셨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멋모르던 어린 시절임에도 지금 생각해도 꽤 괜찮은 음반들을 샀다는 것이다. '달팽이'의 패닉 1집이나, 현재까지 EVE의 보컬인 김세헌씨의 데뷔 음반인 GIRL의 1집, 그리고 '슬픈 언약식', '마지막 약속'으로 3개 방송사 차트를 모두 접수해버린 김정민 2집. 그 외에도 많이 있지만 뭐. 그러나 시기적으로 나는 서태지와 아이들을 접하지 못했다. 하여가가 포함된 음반을 잠시 들었던 것 그것이 전부. 잠정적 활동 중단 상황에서 96년 초 은퇴를 해버렸다.

1996년의 가장 큰 사건은 역시 H.O.T의 데뷔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가장 큰 사건은 신승훈을 접한 일이었다. 매주 즐겨보던 가요 톱 텐을 진행하던 손범수 씨가 5집으로 돌아온 '발라드의 황제'라면서 추켜세우고, 한 곡만 간주부분 편집해서 부르고 들어가는 가수들이 수두룩한 가운데 새 앨범의 곡들을 몇 곡이고 연달아 부르는 것이 아닌가. 거기다 슬픈 멜로디에 한없이 맑게 울려 퍼지는 소리가 그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었다. 특히 5집의 타이틀인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의 간주를 위해 30명 정도의 바이올린 합주단을 방송 시에 데리고 다녔는데, 가사까지 눈물이 흐를 것만 같으니, 그날 이후로 나는 신승훈에 완전히 빠져들게 되었다.



5집부터 10집까지..

 후에 접어들어서는 데뷔 시절부터 4집까지의 음반도 다 들어봤지만, 5집부터 그를 알게 되었고 직접 산 앨범도 5집부터 10집까지니 일단 이 앨범들부터 소개하려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5집 - Shin Seung Hun Ⅴ (1996.05.01)

5집의 경우 최초로 신승훈이 전체를 작사&작곡한 앨범이다. 5집의 타이틀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은 정말 엄청난 곡이었다. 비록 내가 보던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는 1주 늦게 컴백한 김건모의 '스피드'에 밀려, MBC에서 고작 1번 1위를 수상했을 뿐이지만, 정말 가만히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를 것만 같은 신승훈 발라드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다. 후속곡이었던 '운명'은 사랑타령이 아닌, 자신을 노래한 자전적인 노랫말이 있는데, 나는 그 가사들을 매우 마음에 들어했다. 또한 이후로 많이 활용되는 흑인 음악 코러스를 접목시킨 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당시 이 앨범을 반년 이상 매일 들었다. 모든 곡의 가사를 다 외울 수 있을 정도였는데, 지금 생각해도 어느 하나 좋지 않은 곡이 없다. 방송을 타지 못한 곡 중에 가장 추천하는 곡은 'Happy Birthday to Me'

사용자 삽입 이미지

6집 - Shin Seung Hun Ⅵ (1998.02.01)

 역시 신승훈 본인이 전체를 작사&작곡한 앨범이다. 그러나 본인에겐 가장 관심 밖의 앨범이고, 아마 모든 사람들에게도 그럴 것이다. KBS 빅쇼에서 열창하는 무대를 본 기억이 나는데, 그 후에 탈세 혐의를 받고 김건모와 함께 활동을 접어야 했다. 자세한 사항은 알지 못한다만, 두분 다 무혐의로 확인됐고, 이후로 1~6집의 음반사인 (주) 라인음향과 결별을 하게된다. 타이틀은 '지킬 수 없는 약속'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고개숙인 너에게'를 가장 좋아한다. "울지마 아직 우리에겐 지나간 날보다 남은 날이 더많아. 무릎 꿇지 마라 그대여, 이 세상 끝에서 함께 웃는 날까지." 이 소절을 너무나도 좋아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7집 - desire to fly high (2000.03.17)

 최초로 발라드가 아닌 곡을 타이틀로 올렸다. 타이틀인 '전설 속의 누군가처럼'은 5집의 '운명'에서 등장했던 흑인 코러스 팀이 좀더 큰 힘을 발휘한다. 이지적인 느낌이면서도 시원하게 트인 멜로디, 그리고 자아 성찰과 꿈과 희망을 노래하는 이 곡은 그의 음악성을 훨씬 끌어올려줬다. 개인적으로는 '가잖아'를 매우 좋아한다. 이 잔잔한 피아노 간주와 함께 시작되는 이 곡은 발라드는 라이브에서 들으면 정말 그 아름다운 목소리와 달콤씁쓸한 멜로디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곡이다. 분명하게 텐션을 올리고 소리를 높이는 절정 부분이 약함에도, 절제된 잔잔한 멜로디의 미학을 보여주는 반드시 라이브로 들어야할 곡이라고 할 수 있다. 후속곡이었던 '엄마야'는 이후 라이브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곡으로 율동을 통해 팬들과 함께하는 콘서트를 만드는 데 혁혁한 전과를 올리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8집 - The Shin Seung Hun (2002.01.14)

 이어지는 하락세 속에서 오래간만에 대중적인 인기을 회복한 앨범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물론, 국내에서도 대단했지만 중국과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모은 영화 <엽기적인 그녀> 삽입곡인 'I Believe'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다. 앨범 발매 직후인 19일과 20일,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 8집 SHOWCASE가 있었다. 티켓 값은 고작 만원. 말 그대로 앨범 소개를 위한 라이브 무대였는데, 이 라이브에서 나는 신승훈이 얼마나 대단한 가수인가를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타이틀 '사랑해도 헤어질 수 있다면'은 그야말로 신승훈식 발라드 중에서도 대중적인 코드에 맞춘 곡이다. 슬픈 멜로디와 가사, 절정 부분에서 맑고 구슬픈 고음을 내지르는 사랑 타령 - 모든 요건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이 앨범에도 참 좋은 곡이 많다. '가잖아'의 뒤를 잇는 '이런 나를...''애이불비(哀而不悲: 슬프지만 울지 않는다)는 끊어 읽는 듯한 창법과 리듬감, 고풍스러운 어미를 활용한 노랫말로 이루어진 세련된 비가(悲歌)라고 할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Special - THE LEGEND (the new / the classic / the festive) (2002.11.20)

 이 스페셜 앨범이야말로 신승훈의 진정한 베스트 앨범이라 할 수 있다. 라인음향에서 판권을 이용해 지맘대로 낸 Endless Ballads는 결코 인정할 수 없다. the new는 신곡 4곡을 담고 있는데, Ash와의 듀엣곡인 'Always'가 참 듣기 편안한 곡이다. the classic은 기존의 히트곡들을 편곡하여 다시 불렀으며, '가잖아'와 '이런 나를'의 경우 2002년 서울 공연을 라이브 버전이 실려 있다. the festive에는 크리스마스 캐롤 4곡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중 직접 작곡하고 김조한이 피쳐링한 Christmas Miracle은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 틀어놓으면 낭만적인 분위기가 연출되는 멋진 곡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9집 - Ninth Reply (2004.02.03)

 이 앨범의 타이틀 곡 선정은 정말 실수였다고 생각된다. 타이틀인 '그런 날이 오겠죠'는 물론 좋은 곡이지만, 대중성을 띄기엔 좀 모자란 곡이면서 '전설 속의 누군가처럼'같이 음악적 시도조차 보이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뮤직 비디오에 끈끈한 우정을 자랑하는 김민종이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9집 최고의 곡은 '두 번 헤어지는 일'. 신승훈식 발라드를 가장 잘 따르는 곡 중에 하나로 가사가 참 아름답다. 프롤로그를 제외하고도 14개 곡으로 가장 빵빵한 트랙을 가진 이 앨범은, 특정 히트곡이 아닌 앨범 전체를 통해 그 변화와 새로운 시도를 느낄 수 있는 앨범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0집 친필 사인 한정반

10집 -  The Romanticist (2006.10.10)


 데뷔 16주년, 날짜를 10월 10일에 맞추어 발표한 10집 앨범은 타이틀 'Dream of my life'로 많은 것이 설명된다. 사랑과 이별이 아닌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 곡은, 신승훈 스스로가 10집을 터닝 포인트로 하겠다고 얘기한 만큼, 그의 목소리가 앞으로 어떤 음악으로 펼쳐질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는 곡이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이런 곡은 내 타입은 아니다"라며, 'Lady'나 '시간을 뒤로 걸어' 등의 발라드 곡을 많이 듣지만, 내 경우엔 'Dream of my life'의 노랫말이 참 와닿더라.

앨범 발매 후 인터뷰 [melon juice] 신승훈 그가 노래하는 이유



그는 발라드의 황제였다

 '발라드'라는 가요 장르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던 장르이다. 정의 자체는 고전 음악의 한 분류 또는 이야기 형태의 시나 악곡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것이 한국에서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노래를 지칭하는 말로 쓰이면서 한국식 '발라드'가 탄생했다. 90년대 초부터 현재 2008년에 이르기까지, '댄스', R&B', '힙합', '랩' 등 젊은 층이 선호하는 제 1의 장르는 변화했고, 서로 퓨전되었다. 그러나 그 1인자들의 흥망성쇠를 옆에서 바라보며 꿋꿋하게 살아남은 '발라드'는 정말 오랜 스테디셀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발라드'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아티스트는 단연 신승훈일 것이다.



그의 앨범은 1400만장 이상 팔렸다

 신승훈이야말로 90년대 밀리언셀러 시대 최고의 수혜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설사 가요 톱 텐에서 1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의 앨범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그가 부르는 노래의 특성상, 댄스 등 다른 장르에 비해 앨범을 직접 구입하려하는 소장 가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주얼이 아닌 사운드로, 여러 번 들으면 들을 수록 값진 신승훈의 노래는 그를 조용필 씨를 제외하곤 가장 많은 음반을 판 가수로 만들었으며, 더이상 밀리언 셀러가 나올 수 없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불멸의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그는 데뷔부터 싱어송라이터다

 신승훈의 평 중에 정말 안타까운 점은, 많은 이들이 그가 싱어송라이터라는 점을 간과한다는 것이다. 무명 시절 통기타를 들고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던 촌뜨기가 상경해서는 자신의 곡들로 앨범을 내기 위해 음반사를 전전했다는 이야기는 기획사에 의해 키워지는 뮤지션 천지인 요즘에는 상상하기 힘든 얘기다. 물론 그에게도 '김창환', '김형석', '심현보' 등 많은 도움을 준 가요계의 큰 손들이 있다. 그러나 1집의 '미소 속에 비친 그대'부터 수많은 그의 곡들은 직접 쓰여졌고, 5집에 이르러서 프로듀싱까지 전부 자기가 맡을 만큼 그의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면모 역시 대단하다. 2집에서 베토벤이 작곡한 가곡 'Ich liebe dich'를 '보이지 않는 사랑' 도입부에 삽입한 것은 많은 이들에게서 회자되는데,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에 태평소 소리가 들어간 것과 비슷하게 평가될 수 있다 하겠다. 5집의 '운명'에서 시작된 흑인 음악 코러스의 삽입, 7집의 '전설 속의 누군가처럼', 8집의 '애이불비', 10집의 'Dream of my life' 등 음악적으로 시도한 변화가 적잖음에도, "신승훈 노래는 맨날 똑같다"며 발라드 가수로 낙인찍혀 작곡가로서의 능력조차 평가절하되는 현실은 정말 슬플 수밖에 없다. 발라드를 부를 때는 최고의 장점이던 그의 목소리가, 다른 장르를 소화할 때는 오히려 발목을 붙잡게된다며 신승훈 자신이 그점을 아쉬워 하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는 한류스타다

 한류(Hanryu or The Korean Wave)는 해외에서 역으로 연구를 할 만큼 엄청난 문화 현상이다. 2001년 NHK 위성 채널에서 겨울연가가 전파를 탄 이후, 영화 '엽기적인 그녀' 역시 일본 및 중국에서 대 히트를 쳤다. 그리고 영화 내 삽입곡을 부른 신승훈의 이름도 자연스레 알려지게 되었다. 홍콩의 4대천왕 중 한명인 리밍이 '순간을 영원처럼'을 리메이크한 것 등, 신승훈 스타일의 음악은 해외에서 새로이 알려지곤 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다소 시기를 놓친 감이 있는 2005년에 일본으로 진출한다. 중요한 것은, 그가 단순히 영화 인기에 편승한 것이 아니라 철저히 공연으로 승부하며 팬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I Believe' 싱글을 발매하고, 일본 내에서 4년간 TV 출연을 거의 하지 않고 공연 활동만을 펼친 신승훈은, 2007년 12월 요코하마 아레나에서 펼쳐진 콘서트에서 1만 객석을 가득 메우며 일본 내에서 성장한 그의 네임 밸류를 확인시켜줬다. 메이저 음반사인 AVEX와 계약한 신승훈은 이미 그의 음악성을 상당히 인정받은 상태다.



변화하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자

 이미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보였지만 그다지 인정받지 못한 신승훈. 그러나 그는 발라드 가수가 아닌 다른 음악으로의 변화를 공언했고, 10월에는 프로젝트 음반을 발표할 예정인데, 발라드가 아닌 다른 장르가 될 거라고 한다. 일본 시장에서는 이미 어느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한다. 애석하게도, 앨범 판매와 공연만으로 승부하는 가수에겐 일본 시장이 한국보다 끌릴 수밖에 없다. 이미 40대 중후반을 향해 달려가는 B'z가 싱글만 냈다하면 오리콘 차트 상위권을 달리는 것을 보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한국 무대에서도 많은 활동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내가 가수여도 할 수만 있다면 일본으로 진출할 것이다. 일본에선 이미 어느 정도를 자리를 잡은 상태이다. 사그러드는 한류 열풍 속에서 오히려 더욱 빛을 내는 가수로 발전하길 바란다.
여지껏 음악이 아닌 다른 것으로 외도한 적이 없으며, 평생을 곡을 쓰고 노래를 부르겠다고 공언한 그가 나아갈 길은 '위대한' 아티스트의 길일 것이다. 비록 예전만큼 방송 친화적이 아니더라도, 예전만큼 애절한 발라드를 부르지 않더라도, 나는 그의 음악과 그의 노력에 찬사를 보낼 것이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음악"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8/06/26 18:07 2008/06/26 18:07
꿈마루
음악 2008/06/26 18:07
Powerd by Textcube, designed by criuce
rss